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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도기현 택견론에서의 반론의 방식에 대한 논고(방명록글에 대한 답글1)


원글: 2015-11-01 21:19:15

-1. 논의가 계속될수록 부득이하게 도기현 회장님에 대해서 비판적인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점,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의 원래 의도와는 좀 거리가 멀지만, 상황이 어쩔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택견의 역사에서 도기현 회장님의 역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갖는다는 점을 누구나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복구타봉법이라는 닉네임을 쓰시는 분의 주장들을 보면 도기현 회장님과도 만나고 해서, 대체로 도기현 택견론에 대한 저의 비판에 대해, 도기현 택견론에서 내세울 수 있는 옹호로 보여서, 이 글의 제목을 "도기현 택견론에서의 반론 방식"에 대한 것이라고 붙였습니다. 삼복님을 도기현 택견론의 입장을 대표하는 주장의 하나로 본 것이죠. 여기에 이의가 있다면 댓글 주시면, 타당한 경우 제목을 바꾸겠습니다.


0. 지난 7월부터 있었던 이 논쟁의 가장 큰 성과는, 도기현 택견론이 작은 원형론에 기대고 있고, 고용우 택견론은 큰 원형론이라는 현저한 차이를 확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도기현 택견론 = 작은 원형 + 택견배틀 및 옛법연구에서 나오는 동작들

고용우 택견론 = 큰 원형

바로 이 차이가 도기현 택견론에서 스스로 피력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논쟁 이전에 도기현 택견론이 택견배틀에서 나오는 동작이나 옛법 연구에서 나오는 동작들도 다 송덕기 원형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저에게 도기현 택견론이 보다 명료해진 것이죠. 작은 원형론이란, 송덕기 택견의 원형이란, 1982년인가 83년인가 송덕기옹과 신한승옹이 잔디밭에서 손내리고 근접거리에서 서로 발공방하면서 넘어뜨리기 연습하던 그것. 그것이 택견의 원형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게임 형태가 단오날 마을 대항으로 이루어져 내려왔고, 그것이 택견이라는 것.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그걸로는 도장 운영이 안되니까 택견배틀과 같은 현대적인 형태를 발전시킨 것이라는 주장. 바로 이 주장이 바로 도기현 택견론의 핵심 내용이며, 마치 이용복 택견론과도 흡사하다는 그것입니다.


1. 예시론과 우연론
삼복님이 기본 논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도기현 저서를 포함한 다른 택견 저서들의 사진들은 모두 특정 명칭의 기술에 대한 하나의 예시이지, 전형이나 표준형이거나 한 것이 아니라는 것. 다른 하나는 송덕기옹의 다채로운 사진들에 나타난 동작들은 하다보면 나오는 동작이지 어떤 특별한 동작이 아니라는 것. 혹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자를 예시론이라고 하고 후자를 우연론(contingency theory)이라고 합시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도기현 저서의 외발쌍걸이도 하나의 예시이고, 박종관 저서의 외발쌍걸이도 하나의 예시이므로, 도기현 저서의 외발쌍걸이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또한 송덕기옹의 다양한 사진들에 나오는 동작도 어쩌다 보면 나오는 동작이라, 굳이 이름을 붙일 필요도, 의미를 구할 필요도 없으며, 그것은 발회목잡기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1) 예시론에 대하여.

먼저 예시론부터 살펴봅시다. 여기서부터는 "수련 형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자 합니다. 그전까지 훈련 형태, 트레이닝 등등으로 불렀던 것인데, 구큰타 선생의 석사논문에서 사용한 수련 형태라는 말이 전통 무술에서의 동작, 훈련, 수련, 트레이닝, 연습 등등을 표현하는데 보다 적절한 단어라고 보입니다.
예시론에서는 고유한 수련 형태란 없으며,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어퍼컷을 허리를 숙이고 연습해도 되고 팔을 펴서 연습해도 되고 허리를 젖히고, 혹은 오른쪽으로 구부려 연습해도 되고...등등 다양한 연습 형태 혹은 수련 형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잘 알 수 있듯이, 택견이든 권투든 어떤 무술을 소개하는 책에, 기본적으로 가장 많이 하는 수련 형태가 아니라, 다른 희안한 응용 형태를 사진 찍고, 전형적인 수련 형태는 찍어놓지 않고 어떤 기술을 설명한다는 것이 잘 납득이 가는지 묻고 싶군요. 당연히, 어떤 무술을 소개하는 책에서는 어떤 기술의 명칭을 소개하고 그 동작을 가장 전형적이면서도 기본적인 동작 혹은 수련 형태를 사진으로 싣고 동작을 소개하죠. 그리고 응용 형태는 작은 사진으로 구석에 배치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말 설명으로 대신하는 것이 통례입니다.
박종관 저서가 교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박종관 저서가 교본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지, 응용형태만으로 점철된 책인지... 박종관 저서가 출간된 시점은 1983년으로서 아마 거의 최초의 택견 저서일 것으로 보이며, 무형문화재로 등재도 안된 시점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택견을 세간에 소개하는 책으로서, 교본 형식임은 물론, 가장 기본적이고 전형적인 수련 형태를(물론 저자 자신이 생각하는) 실어놓았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어떤 기술에 대해 전형적인 수련 형태를 실으려는 의도를 가졌으리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 의도의 성공 여부는 차치하고 말이죠.
도기현 저서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2007년 저서를 출간할 때 송덕기 원형 택견을 소개하기 위해서 저술했으니 당연히 교본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동작/기술의 유래를 송덕기옹과의 회고담을 곁들여 적고 있습니다. 서문에도 "택견을 어떻게 연구하고 수련해야 하는지를 알게"되서 책을 썼다고 하고 있고, 또한 "응용수"나 "겨룸수"보다는 낱기술 위주로 간단하게 실었다고 하고 있죠. 즉 전형적인 것을 실었다는 것이죠. 응용수는 다른 책에서 하겠노라고 하고있죠(도기현, [우리무예택견], 9쪽). 박종관 저서의 서문에서도 역시 "가급적 응용 방법을 생략하였다"고 쓰고 있으면서 "원형을 보존"하려는 의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박종관, [전통무술택견], 11쪽).
어찌 보면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책이라는 공간은 지면이 한정되어, 가장 전형적인 사진을 싣고, 또 도장에서 가르칠때도 가장 전형적인 수련형태를 가르치고, 응용수는 나중에 가르친다. 그리고 당연히 교본 성격의 책에서는 기본 동작, 전형 동적, 표준형이라면 표준형이라고 할 동작, 어떤 점에서 형이라고 불리는 동작들을 위주로 책에 싣습니다.
그럼에도 박종관 저서의 외발쌍걸이와 도기현 저서의 외발쌍걸이를 그냥 하나의 예시일 뿐이라고 한다면, 너무 이질적인 동작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즉 박종관 저서의 외발쌍걸이와, 도기현 저서의 외발 쌍걸이는 다른 기술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둘 중 어느 하나만 송덕기 원형에 가깝다고 보아야 합니다. normal variant 어쩌고 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동작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2) 우연론에 대하여.

결련협회 택견의 수련형태에 존재하지 않는, 혹은 택겨배틀이나 옛법 연구 하다가 우연히 나오는 송옹의 어떤 동작에 대해, 그냥 그것은 하다 보면 나오는 동작일 뿐, 어떤 의미가 있는 동작이거나 혹은 어떤 수련 형태가 아니다. 또는 인지 아닌지 모른다라는 삼복님의 주장을 우연론이라고 합시다. 예컨대http://blog.daum.net/seomn8967/96 의 8번(a)같은 송옹의 동작같은 것에 대해서 말이죠. 아무튼 결련협회의 수련형태, 혹은 기본형,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것에는 없는 것을 주로 말합니다. 팔 휘저어 상대의 팔 공격(택견베틀에서는 주로 잡으러 오는 손)을 막는 동작이나, 올라오는 발을 잡는다거나 하는 것에 주로 그런 주장을 하시죠.
http://blog.daum.net/seomn8967/99 의 7번 사진(b)이나 기타 양손을 연동하여 사용하는
 http://blog.daum.net/seomn8967/96 의 10번(c)이나 11번(d)같은 사진에 대해서 말이죠.

                  < a>                                     <b>                                              <c>                                                      <d>



이러한 주장은 다소 당혹스러운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스승의 동작,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도 않은 스승의 동작에 대해 어쩌다 보면 나오는 동작이라거나, 어깨 풀기 위한 동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그 동작/기술을 못배워서 모른다는 것, 즉 사사 기간이 짧다는 것을 말해줄 뿐인데 그러한 주장을 버젓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증거를 대라고 합니다. 더 많이 배워서 그 동작을 알고 있어서 그 동작은 이런 것이라고 설명하는 선배 앞에서, 그게 스승에게서 온 것인지 증명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니, 못배운 사람이 되려 역정을 내는 상황이라고 할까요? 상당히 의아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도기현 택견론이 그렇게 되려 역정을 내는 근원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작은 원형론이고, 다른 하나는 도기현 준거론입니다. 다시 말해, 택견의 원형, 즉 자신이 송옹으로부터 배운 것은 근접 거리에서 발공방 하다가 넘어뜨리는 것이 택견의 원형이라는, 즉 민속 놀이로서의 택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법수 몇가지. 그게 송덕기 택견 원형의 다라는 것이 도기현 택견론의 "작은 원형론"입니다. 그러니 그 작은 원형을 벗어나는 다양한 송덕기옹의 동작들은 그냥 하다보면 나오는 것이거나, 택견 배틀하다보면 나올 수도 있는 동작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게다가, 고용우 택견에서 송덕기옹 사진의 그 동작은 이거다라고 말해주면, 그게 당신이 말한 그 동작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역정을 내는데, 이것은 곧 자신이 배운 것이 송덕기 원형의 준거라는 대단히 자기중심적인 도기현 준거론때문입니다. 내가 배운게 다인데, 내가 안배운 것을 어디서 갖고 왔냐는 것이죠. 무술인의 기본적인 덕목인 겸손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런 태도적인 것은 부차적인 것이므로 일단 넘어갑시다.

그러므로 이 우연론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반론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작은 원형론이 틀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기현 택견론이 기대는 택견배틀과 옛법 연구로부터 나오는 송옹 사진 비슷한 동작들이 송옹 사진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우선 작은 원형론이 갖는 한계는, 인터넷에 돌아다는 사진들, 특히 자료실의 [주부생활]에 나오는 기사에도 나오듯이(특히 두번째와 세번째 사진) 손질 및 태질을 풍부히 담고 있는 사진에 대해서 어떠한 해석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해석을 못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작은 원형론의 틀을 기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송덕기옹의 택견 원형은 최소한 작은 원형론보다 더 크며, 무술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태견]이 등장하면서, 거기 나오는 무수한 태질 사진들, 관절기와 혈누르는 사진들은 도기현 택견론의 작은 원형론을 기각시키기에 충분한 증거들로 보입니다. 그런 사진들은 어쩌다 보면 나오는 동작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죠. 다음 <송덕기옹-고용우 혈누르며 팔 잡아 넘어뜨리는 사진>이 택견 배틀하다보면 나오는 동작인가? 아니면 옛법 연구 하다보면 나오는 동작인가? 하는 물음에 결련협회에서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한 일입니다.

 

                                                 <송덕기옹-고용우 혈누르며 팔 잡아 넘어뜨리는 사진><e>

일단 작은 원형론이 갖는 커다란 한계는 정낙준 사범님과의 논쟁에서 이미 잘 논의된 바 있습니다. 도기현 택견론의 작은 원형론은 결국 정낙준 사범님의 택견론과 비슷하며, 더욱이 이용복 총사의 택견론과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택견의 원형을 놀이-경기로 보고, 무술적 성격이 낮다고 본 것이죠. 다만 정낙준 사범님의 택견론에서는 옛법을 택견과 별도의 체계로 보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도기현 택견론은 작은 원형론에 더하여 택견배틀로부터 나오는 형태들, 그리고 옛법연구로부터 나오는 형태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택견배틀과 옛법연구로부터 송덕기옹의 다양한 사진들이 해석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가지 활개짓, 즉 상대가 덜미를 잡으려고 손을 뻗을 때 그것을 팔로 치우는 것 등과 같은 것이나, 옛법 연구에서 중단 발 잡는 것 등에서는 비슷한 동작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경기를 하다보면 그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죠. 그러나 [주부생활]의 기사에 나오는 것과 같은 다양한 태질형 동작들이나 팔을 얽어 비트는 동작들이 택견배틀이나 옛법 연구를 통해서 나올 수 있을까요? 가능성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택견배틀의 룰로는 팔을 엮어 꺽기로 넘어가는 동작이 있기 어렵고, 옛법 연구는 아직 다 완성되지 않고 있는 까닭입니다.

더욱이, 택견배틀로부터 나오는 동작은 송덕기 원형인가? 라고 물으면 아마도 자신있는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도기현 택견론에서는 택견배틀이 송덕기 원형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원형은 아랫발질 공방으로 넘기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옛법 연구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동작들은 송덕기 원형일까요? 물론 도기현 택견론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타무술 섭렵하면서 옛법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도기현 택견론에서의 주장은, 위대태껸도 우리와 같이 그냥 고용우 선생이 개발한 현대 무술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지독한 도기현 준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박종관 텍스트와 도기현 텍스트, 해석의 우열 문제

삼복님의 글 중에, 박종관 저서를 보면 낱기술론으로 서술하고 있는 곳도 많은데, 왜 하필 연동 스타일로 서술한 몇 가지 가지고 연동론이 송옹 원형이라고 하느냐 하는 비판이 있습니다. 당연한 의문일 줄 압니다만, 제가 일전에 서술한 바와 같이 모든 텍스트는 부분적 진실을 담고 있다고 말씀드린 바를 유념해 주시면 그런 비판은 무의미해집니다. 즉, 제가 박종관 텍스트나 [태견] 텍스트를 자주 인용하여 고용우 텍스트와의 일치성을 논한다 하여, 박종관 저서의 다른 곳을 보면, 혹은 [태견]을 보더라도, 고용우 텍스트와 일치하지 않은 것도 있지 않느냐? 왜 선택적으로 고용우 텍스트와 일치하는 것만 골라서, 고용우 텍스트 원형 근접론을 주장하느냐? 하는 주장이죠.

텍스트 비교분석이든 고고학이든 역사학이든, 과거의 유물 및 사료로부터 진실을 찾아가는 학문, 아니 대부분의 학문은 다 그렇습니다. 주어진, 혹은 발굴되거나 발견된 모든 자료는 다 불완전합니다. 완전한 자료가 있다면, 사실 그 학문은 더 이상 연구자가 있을 필요가 없이, 배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죠. 즉 다양한 불완전한 자료들 중에서 의미가 해석되는 것을 골라, 해석된 의미들을 조합하여 전체적인 진실을 짜맞추는 것입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산 성내리 신석기 유적의 빗살무늬 토기 사진><f>

 

 

아산 성내리 유적에서 나온 것이죠. 발견된 것은 빗살무늬가 새겨진 토기 몇 편입니다. 그리고 탄소 연대 측정으로 3천여년전이라는 결과가 나오고, 기타 움집 형태라든가 간석기 유물이라든가 하는 것이 나오므로 당연히 빗살무늬토기네 하고 빗살무늬 토기 모양으로 설정하고 발견되지 않은 부분을 가설적으로 채워 넣은 것이입니다. 고고학에서는 당연히 다른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성내리 유적의 이 토기 몇 편을 사진과 같은 형태의 빗살무늬 토기라고 결론 내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이라는 단서가 붙은 고고학적 진실입니다다. 역사학에서 사용하는 글로된 사료 역시 마찬가지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다 불완전하죠. 그리고 각종 중국 문헌들 다 불완전한 진실만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저러한 사서의 가치를 사료 비판을 통해 검토한 다음 잘 해석되는 것만을 가지고서 과거의 진실을 짜맞추는 것입니다. 완전한 증거란 애시당초 없으며, 보다 likely한 증거들을 모아 더 likely한 진실을 찾아낸다고 할까요?

박종관 저서 역시, 그리고 [태견] 역시, 하다못해 70년대 노사들의 증언 역시, 혹은 80년대 초에 사사했던 분들의 증언 역시, 언제나 모든 텍스트는 완전하지 않으며, 부분적으로만 옳습니다. 더욱 극단적으로 말해서, 도기현 텍스트도, 고용우 텍스트도 송덕기옹 원형과 견준다 할때, 완전하지 아니합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다만, 더 많이 원형에 근접한 텍스트, 덜 근접한 텍스트가 있을 뿐이며, 본인은 지금, 고용우 텍스트가 송덕기옹 원형에 가장 근접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용우의 택견 해석이 도기현의 택견 해석에 비해, 또 어느 누구의 해석(이용복 총사든 신한승옹이든 아니면 박종관 저서의 텍스트보다도 등등) 가장 원형에 근접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박종관 텍스트에는 송덕기 원형과 같은 부분도 다른 부분도 있고, 그래서 당연히 고용우 텍스트와도 같은 부분이 있고 다른 부분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태견]자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다못해 도기현 텍스트에도 송덕기옹의 원형과 비슷한 부분이 꽤 있다(라고 나는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박종관 저서에서 도기현 텍스트와 비슷한 해설이 있는 것을 두고 무슨 심봤다 하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두 불완전하므로 진실을 알 수 없고, 모조리 상대적인 것일까요? 불가지론의 상황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든 텍스트들이 불완전한 상황에서도 학자들은 그 불완전한 텍스트들을 종합함으로써, 보다 원형에 근접한 텍스트를 판정할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송덕기옹이 남겨준 사진들이 꽤 많습니다. 증언들도 꽤 있고요. 그러므로 궁극적인 준거는 누구의 해석이, 즉 누구의 택견론이, 즉 누구의 텍스트가 송덕기옹의 사진들을 더 잘, 더 많이 설명하는가? 또 초창기 사사한 분들의 증언들과 누가 더 많이 일치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써는 도기현 텍스트보다는 당연히 고용우 텍스트가 송덕기옹의 사진들과 다수의 증언들을 더 많이, 더 잘 설명하기에, 혹은 해석하기에 고용우 텍스트가 더 원형에 가깝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삼복님의 지독한 불가지론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고용우 택견론으로는 현재까지 나온 송덕기옹의 사진들을 거의 대부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도기현 택견론은 그렇지 못합니다. 도기현 택견론에서는 그냥 하다보면 나오는 동작이거나, 어떤 기술의 한 예시에 불과합니다. 고용우 택견론이 하는 사진 및 동작 해석과는 분명한 우열 관계에 있습니다.
나아가, 박종관 텍스트는 도기현 텍스트에 비해 먼저 형성되었습니다. 도기현 텍스트는 1990년대에 형성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도기현 선생은 1980년대에 사사한 것이 맞지만, 박종관 텍스트는 이미 그 전부터 사사하여 1983년에 저서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때 도기현 선생은 배우는 단계였습니다. 그리고서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후, 1990년대에 이르러 배웠던 것을 근거로, 체계를 잡아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때, 도기현 회장께서는 박종관 텍스트나 이용복 텍스트, 신한승 텍스트를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도기현 텍스트가 만들어 졌으므로, 당연히 박종관 텍스트와 몇몇 부분에서 견준다면, 박종관 텍스트가 보다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원형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